지속과 무용 갈림길에 선 실손보험
2006년 도입된 실손의료보험은 아직도 진화 중이다. 4세대 보험이 등장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아 5세대 보험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정책토론회를 통해 진화방향이 제시됐다. 이번에는 보건당국도 비급여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그런데 5세대 실손의료보험 도입으로 그동안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손해율을 끌어올리는 비급여 대책이 미흡해서만은 아니다. 진화의 방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실손의료보험 무용론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부담은 커지나 정작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보험료 인상과 비급여 급부의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일부 의료공급자와 소비자의 이해가 결합되어 실손의료보험을 부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비급여 진료 중 일부는 의학적 타당성 측면에서 논란이 큼에도 진료가 많이 행해져 손해율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여긴다.
이에 반해 의료계에서는 대부분 비급여를 의료기관 운영이나 의료기술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하다고 여긴다. 특히 의원급과 중소병원의 비급여 의존도는 높다. 이는 그동안 낮고 형평성이 부족한 국민건강보험 진료수가에 대응하기 위해 비급여를 적극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 문제 핵심은 비급여 진료에 있어
이렇듯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비급여 진료비는 환자에게 청구되나, 피보험자인 환자의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하는 보험회사는 의료기관과 직접적 관계가 없어 문제가 복잡하다. 그렇다 보니 환자는 자신의 진료비가 보험금을 받기에 적정한지 사후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적정으로 판단되면 소비자와 보험회사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하게 부적정하면 보험사기 연루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의료 전문성이 낮은 환자가 진료를 주도하는 의료기관의 처방에 따르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보험자인 환자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환자가 좀 더 나은 치료를 많이 받겠다는 생각에 처방의 적절성도 제대로 따지지 못한 채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피보험자인 환자로서는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현재는 신의료기술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건복지부로부터 승인받으면 바로 비급여 진료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비급여 진료비는 개별 의료기관이 비용,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이렇듯 비급여 진료는 의료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급여 진료의 이용 및 수가 등의 결정에는 수요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나아가 보험회사도 이러한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대책 마련에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보장해야
보험회사도 실손의료보험 상품이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여지는 없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입원비 등 정액으로 제공되는 급부는 적정성 문제 외에도 도덕적 해이 유발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향후 제도개편에 따라 도입될 비중증 비급여에 대해서는 싱가포르에서 실시하는 메디세이브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3층으로 구성된 의료저축계좌 중 메디세이브는 통원치료 등 경증의 의료비에 대응하며, 기여금에 세금이 공제되고 이자가 제공된다. 물론 비중증 비급여 진료비를 메디세이브와 같은 저축계좌에서 지급할 경우 보험회계상 특례 적용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계약자에게 계약재매입 과정을 거쳐 5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낸 보험료의 직접적 통제와 이용 다양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보험을 드는 이유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으로 인한 손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실손의료보험도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품 운영을 위한 인프라가 재정비되고 이해관계자가 합리적 개혁을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출처: 내일신문 경제시평, 2025-01-21 13:00:0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