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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개혁 이후의 연금개혁 접근법

보험정보통장 2025. 6. 19. 23:21

최근 여야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의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구조개혁을 위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재정위기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물론 이번의 모수개혁으로 재정위기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재정위기 문제 외에도 자동조정장치 도입,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간 소득재분배 기능 조정, 국민연금과 직역연금 간 형평성 제고, 정부재정의 지원, 사적연금 개혁 등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이들 과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언급됐지만 연금에 대한 철학이나 인식의 차이가 커서 해결되지 못했다. 또한 이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특히 이번 개혁에 합의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급여의 인하를 겨냥한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향후 구조적 연금개혁의 핵심의제가 될 공산이 크다.

 

자동조정장치가 오히려 정치적 갈등 키울 수도

 

자동조정장치는 인구나 경제상황 등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액 수급연령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이는 법률 개정과 정치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기술적 지표에 근거해 모수의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 국가들 대부분이 내각책임제 정치체제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는 여소야대 등 정치지형에 따라 갈등의 소지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 국가들은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재정안정을 도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급여 수준을 낮췄다. 그런데 급여 수준의 하락은 사회적 불만을 일으켜 정치적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단적인 예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2013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으나 2018년 운영을 중단한 후 2021년에는 아예 없앴다. 대신 연금급여에 대한 물가연동제를 도입했으며, 2023년에는 재정적자를 줄이고자 고소득자들에게 추가의 기여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

 

물론 스페인 이외의 국가들은 여전히 자동조정장치가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 국가에서 이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급여 수준이 하락하면서 그에 대한 저항이 생겨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결국 연금에 대한 모수의 조정이 정치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기술적 지표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치적 논의를 거치되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절차를 잘 만들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기구를 독립시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하면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금개혁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 필요

 

우리는 지난해 연금개혁을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나왔지만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주의깊게 듣고 이해할 시간을 가졌으며 그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들도 간접적으로 참여해 이해를 높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들이 모수개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제는 학자나 전문가를 내세우지 말고 오히려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학자나 전문가는 이해의 조정에 능숙한 사람도 아니며 책임도 덜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정치적 조정과정에서 보조적 위치로 참여하면 된다.

 

연금개혁은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듯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재정안정성 못지않게 보장의 적절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출처: 내일신문 경제시평, 2025-03-24 13:00:2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