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투자 경쟁에 돌입해 있다. 각국이 기술 패권, 경제 안보, 미래 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하며 투자를 주도했고, 이들 양강 사이에서 EU 등이 패권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투자 경쟁을 하는 가운데 생산적 금융이라는 개념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본래 생산적 금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의 실물경제 기여도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제기됐는데, 최근에는 패권 경쟁 속에서 장기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금융으로 진화했다. 재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국과 EU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재차 등장했다.
영국의 잉글랜드은행과 재무부는 비유동성 자산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펀드 구조와 규제 인센티브를 설계했다. 자본시장동맹, 저축투자동맹으로 이어진 EU의 전략도 가계저축과 연금·보험 자산을 녹색·디지털 전환과 국방력 강화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과 같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거나 국채·예금 등 안전성에 치중한 자산을 첨단산업·인프라·녹색전환 등 생산적 영역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생산적 금융은 규제적 유인을 통해 자산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게 한다
우리나라 보험회사는 2025년 6월말 기준으로 1300조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자산의 대부분은 장기간에 걸쳐 운용되는 자산으로 보험회사가 장기기관투자자로서 역할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보험회사는 생산적 금융 참여를 통해 안전자산 위주의 투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투자할 기회를 얻고 있다.
보험회사가 생산적 금융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자산의 일부를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가 높은 실물자산에 투자해 경제성장을 회복시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성장·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기초를 확보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보수적 관점에서 해온 자산운용을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성과 수익성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험산업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새로운 회계 제도와 건전성 제도를 정착하면서 해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두 제도 모두 EU를 중심으로 시작된 제도로서, 특히 건전성 제도는 다소 보수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제약이 있다. 새 제도 아래에서 보험회사는 초장기 국채와 우량채 위주로 운용 비중을 높여 왔다. 그런데 도산의 위험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따라서 보험회사가 생산적 금융에 참여할 수 있게 건전성 규제를 일부 완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영국이 건전성 규제에서 매칭조정의 조건을 완화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높은 인프라 및 신재생 에너지 자산에 대해서는 매칭조정을 허용해 보험회사의 부채 평가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 또한 정책적 중요도가 높고 5년 이상 장기 보유할 자산에 대해서는 주식 위험 계수를 현행 대비 대폭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보험회사의 생산적 금융 참여를 위한 규제 재정립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책형 장기투자에 대해서는 변동성이 당기손익을 뒤흔들지 않도록 회계상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들 자산이 사업모형과 현금흐름 특성 등 회계 기준상 요건을 충족하여 장기보유 목적을 갖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기타포괄손익(OCI)을 활용하거나, 자본규제상 변동성 완화방안을 병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험회사 역시 규제에만 의존하기보다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금융당국의 전향적인 규제 혁신과 보험회사의 내부역량 강화로 투자의 시대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이비엔(EBN) 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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