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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인사이트

[경제시평] 보험보장 격차가 야기할 보험산업의 위기

스위스재보험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의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2800억달러 중 38.6%인 1080억달러만 보험으로 보장했다. 나머지 61.4%는 보장하지 않았다. 이처럼 보험으로 보장이 필요한 수준과 실제 보장하는 수준 간의 차이를 ‘보험보장 격차’라고 한다. 보험보장 격차는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2023년 3월에 글로벌보험협회연맹(GFIA)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보험보장 격차는 연금 1조달러, 사이버보험 9000억달러, 건강보험 8000억달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험보장 격차가 큰 것은 우선 소득이 낮아 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거나 보험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험도 상승에 따른 보험료 인상으로 이용가능성이 작아지는 것도 원인이다. 한편 요율규제나 회계제도 등으로 인해 보험회사가 관련 상품 공급을 기피해도 보험보장 격차가 생긴다. 나아가 보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도 원인이다.

 

보험보장 격차 확대는 보험무용론으로 이어져

 

보험보장 격차는 저소득 국가만 아니라 고소득 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독일 남부지역에서는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3일 사이에 장기간 폭우로 인한 홍수가 발생했다. 피해가 주로 집중된 바이에른주의 홍수보험 가입률이 47%에 지나지 않아 많은 주민이 주택손실을 보상받지 못할 상황이다. 그런데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 전체의 자연대재해보험 가입률 역시 22%에 지나지 않아 기후 관련 손실의 극히 일부만 보험으로 보장된다.

 

대형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형 주택보험회사들이 철수해 보험으로 산불 피해를 보장받기가 어려워졌다. 주 보험당국의 요율규제로 보험료 인상이 어려워지자 일부 보험회사가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보험보장 격차가 있거나 생길 우려가 있는 영역이 다수 있다. 우선 2023년 기준으로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주택이 33.4%, 상가 및 공장은 23.1%이며,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52.1% 정도다. 건강보험도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높아지면서 보험료율이 급격히 오르면 고령자를 중심으로 보험보장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필요한 연금보험은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도입 후 보험료가 수익에서 제외되고 자본부담이 증가할 것을 우려해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한편 보험회사 간 경쟁이 특정 상품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다른 영역에는 경영자원이 적절히 배분되지 못함으로써 보험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듯 여러가지 이유로 보험이 있어도 국민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보험무용론이 제기되고 이는 다시 보험산업의 성장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보험시장의 포화로 인한 저성장 또는 역성장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성장위기는 심각한 문제다.

 

정확한 원인진단으로 대응책 마련 시급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보험보장 격차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결과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험으로 보장해야 할 영역의 위험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적정한 보장방법과 보험료율 책정이 가능해진다. 유병력자나 고령자를 대상으로 최근에 보험보장이 가능해진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이와 함께 위험관리를 위한 보험의 효과성을 알리고 적절한 정보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대재해위험이나 사이버위험 등과 같이 위험이 너무 커서 민간보험만으로 보장하기 어려우면 정부와 역할을 분담할 체계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연금보험은 보험회사가 대응체계를 고도화하고 규제개선의 대안과 보완책도 같이 제시해야 한다.

 

보험산업은 저성장을 우려하기보다는 적절한 보장을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지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보험보장이 필요한 영역을 찾아 제대로 보장하면 성장은 저절로 가능할 것이다.

 

출처: 내일신문, 「보험보장 격차가 야기할 보험산업의 위기」, 2024-06-27 13:00:0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