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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인사이트

[경제시평] 글로벌 재보험 중심지 경쟁의 교훈

지난 4월 영국에서는 집권당인 보수당 의원들이 나서 보험연계증권(ILS) 발행을 승인하는 건전성감독청(PRA)을 질타하면서 의회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직접적 계기는 영국에서 ILS 제도를 배워간 싱가포르가 18건을 승인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런던은 불과 5건만 승인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하락하는 금융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을 확고히 하려고 금융개혁을 추진하던 터라 이를 문제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싱가포르가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 2위인 런던을 제치고 이렇게 압도적 실적을 거둔 것은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사실 싱가포르는 아시아지역의 다른 금융 중심지인 홍콩이나 상하이를 제치고 런던을 바짝 뒤쫓는 3위 도시이다. 싱가포르는 금융 중심지로 이렇게 높게 평가받을 뿐 아니라 재보험 분야도 최근 크게 발전했다. 이미 2014년 당시 런던의 보험시장 로이즈가 싱가포르 법인을 확대하는 것을 계기로 런던의 위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글로벌 금융중심지 경쟁 아시아에서 격화

물론 재보험의 글로벌 중심지는 여전히 런던 뉴욕 취리히 버뮤다의 순서로 꼽히지만, 싱가포르도 20년 이상 노력한 결과 이들에 이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보험 중심지가 되었다. 통화금융청(MAS)이 1999년에 2003년까지 보험 중심지가 되겠다고 선언한 후 2000년 3월부터는 원수보험회사와 보험중개사에 대한 시장개방을 추진했다. 기존에 재보험회사와 캡티브보험회사에 시장을 개방한 터라 이로써 시장개방이 전면화되었다. 시장개방과 더불어 규제도 국제적 수준으로 개선하고 세제도 경쟁력 있게 바꾸었다.

싱가포르는 특히 2017년 최신 재보험 기법인 ILS의 거점이 되겠다고 발표한 후 2018년에 최초로 ILS를 발행했다. 또한 2018년에 세계 최초로 전통적 재보험과 ILS를 활용해 상업 사이버 리스크 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세계 최초의 사이버 대재해 채권은 올해 1월에 런던에서 발행되었는데, 그만큼 경쟁이 치열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싱가포르의 적극적 공세에 홍콩도 반격에 나섰다. 홍콩은 1997년부터 싱가포르에 재보험 중심지의 지위를 뺏겼다고 판단하고 재보험 등에 중점을 둔 보험 중심지 계획을 2017년 발표했다. 그후 특수목적보험회사를 통해 ILS를 발행할 수 있게 별도의 조례를 2020년 제정했다. 홍콩 역시 역내에서 ILS를 발행하는 보험회사 등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인센티브로 유인했다. 그 결과 2021년 10월에 최초로 발행에 성공한 이후로 추가로 3건을 더 발행했다.

글로벌 재보험 중심지 경쟁력, 재보험 생태계가 결정

이러한 경쟁을 보면서 재보험 중심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규제, 세제, 경제·금융 환경, 교육과 인재 정책, 도시의 개방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요소가 서로 어울려 훌륭한 재보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도시만 재보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또한 변화하는 여러 여건에 맞추어 끊임없이 대응력을 키울 때만 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다.

이는 PRA의 문제로 돌아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 의원들은 ILS 발행 신청을 받은 PRA의 접근방식이 생산성 제고, 경쟁력 강화, 혁신 촉진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게 승인 시간을 지체하고 과도한 데이터 및 문서 요구로 승인 여부를 불확실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을 통해 시장친화적 규제 선진국에서조차도 끝없는 규제개혁을 추진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보험산업의 국제화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재보험 중심지 경쟁을 보며 많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제 정부와 산업이 합심해 새로운 보험 생태계를 만드는 도전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